안녕히 계세요. 꾸벅.
미신고 복지시설 실태조사.
사랑의집 소망의집 그런거다. 장애인, 무연고 노인 같은 분들은 사회에서 같이 살 수 없으니까 한 쪽에 모여 사셔야 한다는 그런 곳. 그것도 우리 동네에는 애들 교육상, 기분상, 땅값사수 목적상 안된다고 변두리의 변두리로 치워진 그런 곳. 시설장의 90%가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사역을 명 받으신 목사님이시고, 사역을 하시는 거라는데 사육을 하시는 것 같은 그런 곳.
전국에 몇 천개가 있을지 모른단다. 간판도 없고 노출된 적이 한 번도 없는 곳에다 공동체 사업장이란 이름으로 숙소이자 돈 한푼 못 받는 일터가 되는 그런 곳까지. 그래.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라는 인사와 함께 보내진 정신병원까지. 그렇게 유배된 사람들은 몇 만, 몇 십만이 될지 모른단다.
시설조사는 시민단체 활동가가 주축이 되어 지자체 담당공무원, 복지부 담당 직원을 팀으로 미신고시설을 방문해 내/외부환경점검부터 시설종사자/생활인 면접, 지역주민 인터뷰까지 이루어진다. 대체로 잔뜩 경계한 원장과 봉사활동인지 아닌지 살피는 생활인들과 어색한 인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날 방문했던 경기도 고양시의 어느 미신고시설은 사람보다 개가 많았고 목줄에 묶인 개들보다 풀어놓은 닭과 거위와 기러기들이 더 많았다. 사람이 얹혀사는 것 같다. 곧 나가봐야 한다는 원장님, 1명을 제외하고는 잠시 어디 가 있어서 인터뷰가 곤란한 생활인들, 무슨 말만하면 쓸데없는 소리한다고 혼나던 일하는 할머니까지 단 3명만을 만날 수 있단다. 어디 가있는 생활인은 무조건 절대 만날수 없다고만 했다. 왜 만날수 없는지는 원장보다는 공무원과 싸워야 했고, 단 한명 생활인과의 인터뷰에서는 성폭행 피해진술이 숨어있었고, 회계장부를 포함한 관련 서류를 조사하다가 알게된 건 동생에 언니에 모두가 불법 시설운영으로 집안 사업을 하고 있었다는 거. 그리고 돌아나오는 길에 서둘러 붙잡고 원장이 했던 말은 '말안했는데 사실 생활인 기초수급비를 개인적으로 병원비로 썼어요. 100만원. 미안해요.'
선수들이 장부를 조사하고 인터뷰를 하는 동안, 발을 동동하는 원장이 마당에서 광합성을 하고 있는 내게 왔다.
"제가 많이 잘못한게 있나요. 저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목사 안수받고 남은 인생 좋은 일하다 가려고 한 거밖에 없어요. 제일 높으신 분이 누구죠? 여기 폐쇄해야 하나요? 하지 말라면 안하지 뭐. 나 TV에서 반인권적으로 시설 운영하다가 고발당하고 그런거 봤어요. 전 그런 사람 아니예요. 하지 말라면 안하지 뭐. 애들 다 내보내고 하면 누가 아쉬운데. 다른데 원장들이 그러더라구요. 당신들이 왔다가면 쑥대밭이 된다고. 근데 진짜 저 잘못한거 많은 거예요..? 정말 잘못한거 없는데.."
하소연을 하는건지 화를 내는 건지 용서를 비는건지 모르게 쏟아냈던 말. 그리고 내게 매달렸던 눈빛. 난처했다.
잘못한게 없으면 그냥 같이 얘기를 하면 되는 거라고.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모르게 익숙해져서 누군가에가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거라고.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일에도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해야 하는 거라고. 그 애처로운 표정에 난 호소를 했던 것 같다.
가능한 모든 조사가 끝나고 남는 사람도 떠나는 사람도 남은 말이 없는 그런 상황에 부러 차에서 내려 인사를 했다. 쌩뚱맞게. 원장님 안녕히 계세요.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꾸벅.
이상할 것 없는 말에 멈칫했다. 꾸벅. 고개를 숙인채 흐른 1초는 1시간 같았다.
머리가 복잡했나보다.
쑥대밭을 만들어야 하는 거라고. 한쪽으로 치워진. 그곳이 삶의 종착점이라고만 생각했던 사람들. 좋은 일하신다고 칭찬받던 사람들이 단 하루에 인권가해자가되는. 알 수 없는 커다란 흔들림을. 당신들이나 나나 온 몸으로 받아야 하는 거지.
그 무게가 생각보다 무거워서. 남는 사람이나 돌아가는 사람이나 머리속이 바쁜데 난 무겁기만해서 털석 앉았고 잠시 길을 잃었다.
생각할수록 어설픈 안녕히 계세요.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