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세번째이야기] 3월 7일 - 치앙마이 트래킹 1일차
3월 7일 트레킹 1일차.
차앙마이 트레킹! 체크아웃을 하고, 다시 짐을 쌌다. 태국의 대자연을 체험하고,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고산마을에서 하루밤을 잔다고 했다. 4000km 를 날아와서 만난 신기한 캐릭터들이다. 이들과 보내게 될 이틀간의 여정이 궁금해 미칠 것 같다. 아침부터 신났다.
차가 처음 멈춘 곳은 Butterfly farm. 나비를 풀어 놓은 자그마한 식물원에 산책길이 마련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볼 수있는 뱀눈나비, 꽃들과 싱그러운 야자수들. 한가로왔다. 내내 농담을 주고 받던 두사람의 아웅다웅한 모습처럼ㅎㅎ
또 얼마쯤 가다가 내린 곳은 재래시장이다. 이틀간 일정에 필요한 걸 사라는 모양이다. 한국과 무척 닮았던 재래시장은 시끌시끌했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한가족처럼 모여 앉아 수다를 떨다가 손님을 맞고, 딱 순대와 떡볶이를 팔 것 같은 포장마차의 풍경처럼 정겹다. 여기서 돼지고기 구매. 산 속에서 바베큐! 고기와 얼음을 꽁꽁 묶어 가지고 갈 계획이다. 근데 목살이 영어로 뭐더라. neck of pig? 오. 알아듣는다. 게다가 3kg 에 500바트 란다. 5근에 약 2만원. 고기가 이렇게 싸다니. 여기가 지상낙원.
화장실에 가다. 태국의 공공화장실은 대부분 유료다. 한화로 약 120원. 변기는 위와 같이 단출하고, 보통은 손이 닿는 곳에 비데용 샤워호스가 있다. 비데를 해보진 않았지만 자세가 나올지 궁금하긴 하다. 좀 웃기긴 한데, 한국에 비데가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걸 생각한다면 뒤처리 문화가 매우 깔끔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저 누드사진은 왜 걸어놨을까. 저래가지고 조준이 되겠나 말이다.
드디어 출발! 갑자기 산을 오르던 차가 한참을 가더니 외딴 곳에 내려준다. 도시락을 나눠주고 점심을 먹는 중에 몇대의 차가 더 오더니 한무더기 사람들을 쏟아놓는다. 칠레, 미국, 호주, 일본, 캐나다, 프랑스.. 세계의 베낭여행이 몰려들었다. 어느새 30여명으로 불어난 일행은 서먹서먹하며 조금씩 말을 건다. where are you from?
걷고 또 걷는다. 산길은 한국의 여름 풍경과 다르지 않다. 아열대 기후의 한국. 나무나 풀도 익숙한 것들이다. 등짐의 무게는 내리누르고, 숨이 차오른다. 부쩍 말수가 적어진 사람들. 뜨거운 햇살과 파란 하늘 아래 묵묵히 걷는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할 뿐이다.
그런 것이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낯선 풍경과 문화를 목격하는 과정이 아니라 금새 익숙해진 공간에서 갑자기 낯설어지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문득문득 떠오르는 질문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나'. 놔두고 온 것에 대한 그리움. 왜 일상이 그렇게 시시해졌나. 어떻게 돌파해야 할 것인가. 많은 생각이 떠오르지만 다시 발을 뗀다. 다가오는 이별의 시간이 벌써부터 아쉬워서 지금만 생각하기로 한다.
3시간의 행군을 마치고 도착한 마을. 그리고 세븐일레븐ㅋ. 땀을 너무 많이 흘렸다. 맥주가 반가워서 앉은 자리에서 캔맥주 2개를 원샷. 애미 애비도 모르는 낮술에 정신이 몽롱하다.
몇가구 되지 않지만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반가운 기타! 슬쩍 다가가 연주해보려 했지만 4개의 현에 코드도 전혀 다른 악기.. 낡아서 소리를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공항에서 잃어버린 내 기타.. 그것만 있었다면 더 재미있는 일들을 할 수 있었을텐데.. 아오..
저녁 준비, 저마다 몸을 씻고 잠자리를 정리하던 시간에 마을을 둘러보다가 씁쓸해졌다.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기보다는 전시장 같다는 느낌이 든다. 목에 건 링이 신기해서 들이대는 카메라를 향해 익숙하게 포즈를 잡던 사람들. 마을사람보다 숫자가 더 많은 여행자들이 매일같이 다녀가는 곳에서 전시되는 풍경으로 살아가는 삶이 있다..
버마의 소수민족이었던 카렌족(일명 롱넥족). 버마가 영국의 식민지일 때, 영국으로 부여받은 권력(소수민족에게 다수 버마족을 지배하게 했다는 역사) 때문에 해방되고 나서 태국으로 도피,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고 태국의 소수민족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출국금지가 되어 관광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 내가 지불한 트레킹 비용은 그들의 생활비가 되기 전, 태국정부에서 떼어가는 수수료, 그외 관광업체가 나누었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조차 미안했다. 노동을 파는게 아니라 인간을 팔아대는 현장에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함께했던 일행도 그랬나보다. 묻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인권'이라고 작게 말했던 것 같다. 소리없이 대답을 보냈다. 빌어먹을 자본주의.
씁쓸함은 한낮의 열기와 함께 사라져 갔다. 그럼에도 우리의 시간은 소중하니까. 전기도 없는 곳에서의 밤은 너무나 빠르게, 갑자기 찾아든다. 땀을 뻘뻘 흘리며 가져온 고기로 바베큐 파티가 벌어졌고, 서로를 관찰하던 일본과 한국은 모닥불 앞에서 친구가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던 고기는 글로벌로 나누었고, '온 세계가 함께하는~ 31게임'은 밤이 새도록 계속되었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 하루만 보내면 작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벌써부터 아쉽다. 언어가 달라서 그래서 많은 말을 나누지 못했어도 그 웃음과 함께했던 시간이 어찌나 애틋하던지.. 잠시 거리를 두고 흙바닥에 누워 음악을 듣다가 찔끔. '짙은' 의 음색은 왜 그렇게 슬픈거냐고 혼자 말하다 또 찔끔.
밤이 깊어간다. 모닥불이 꺼져가고, 조금더 가까워진 사람들도 굿나잇. 정말이지 그 밤을 잡고 싶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