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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루맛쇼

몽상(최성규) 2024. 10. 29. 13:08

  트루맛쇼 (2011) The True-taste Show --------------------------------------------------------------------

 

대한민국 방송에서 맛은 맛이 갔다. 아니 방송이 맛이 갔다. 시청자가 뭘 보든 소비자가 뭘 먹든 아무 상관없다. 우리에게 <트루먼 쇼>를 강요하는 빅브라더는 누구인가?
2010년 발표된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엔 하루 515개의 식당이 창업하고 474개가 폐업하는 서바이벌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살벌한 정글에서 생존하기 위한 식당들의 처절한 투쟁에 맛의 순수함은 사라져버렸고 미디어와 식당의 부적절한 관계가 시작됐다. 2010년 3월 셋째 주 지상파 TV에 나온 식당은 177개. 1년으로 환산하면 무려 9,229개다. 이 중 협찬의 탈을 쓴, 사실상의 뇌물을 주고 TV에 출연한 식당은 몇 개나 될까? 대박 식당을 위한 미디어 활용법 실험을 위해 직접 식당을 차렸다. 식당 이름은 ‘맛’ 영어로 ‘Taste'다. ’맛‘의 인테리어 콘셉트는 딱 하나다, 몰래 카메라 친화적 인테리어! 모든 거울 뒤엔 카메라가 숨어있고 식당 구석구석까지 CCTV로 촬영된다. ’맛‘은 실제 영업을 하는 다큐멘터리 세트다. 평범한 식당을 TV추천 맛 집으로 변신시키는 돈의 기적은 가능할 것인가?

미디어와 제작자의 탐욕과 조작에 관한 블랙코미디. 이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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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철도노조 서울기관차지부 노보 '서울기관차 제84호' 에 송고된 글입니다.

 

좀 더 세고 뻔뻔한 거짓말이 필요했던 영화

 

- ‘조작 영화’ 라는 일부 비판에 부쳐

 

 

“사견이지만 이 영화는 영화가 아니야” 영화를 보게 된 이유였다. “애초에 조작하고 속이는 연출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만들었는데 영화가 아니라니.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에게 요구된 윤리적 책임, 공중파 방송국을 공격한 대가로 상영금지가처분 대상이 되어 상영마저 불투명했던 문제작, <트루맛 쇼>. 영화보다 영화 밖이 소란스러운 영화의 개봉이 기다려지게 만든 이유였다. 법원은 개봉 전날 MBC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맛간 방송을 보여드립니다. <트루맛 쇼>

 

 

 

김재환 감독의 <트루맛 쇼>는 맛집을 찾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실태를 파헤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점포를 직접 소개하는 것에서 스타 인터뷰에 노출되는 간접광고까지, 일주일이면 200여 개의 맛집이 방송에 등장한다. 하지만 대부분 가짜. 세상에 없는 요리를 만들어 내는 건 애교다. 브로커와 리베이트로 얼룩진 뒷계약, 고용된 손님과 훈련된 리액션으로 조작된 TV속 맛집의 실상은 상상 이상이다. ‘맛간’ 방송의 행태를 고발하려는 감독의 의도는 영화의 시작부터 담백하다. “나는 TV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 알고 있다.” 여기에 탐사 취재의 보도 영상이 아닌 영화라는 이름을 획득하기 위한 기발한 기획이 입혀진다. 돈을 들여 가짜 식당을 임대하고 브로커와 접촉해 방송 스케줄을 잡는다. 돈이면 안될 게 없는 방송판에 똑같은 방식으로 뛰어든다. 때로는 제작진이 직접 여느 맛집 쇼에 손님 역할로 참여하기도 한다. 결국 ‘방송 출연한 맛간 맛집’의 대열에 당당히 합류, '방송나온 집' 간판을 벽에 걸면 문을 닫는다. 영화는 곳곳에 블랙 유머를 배치, 부조리를 마음껏 조롱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배신감과 통쾌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방송 PD출신의 감독이 누구보다 잘 아는 소재를 연출했다는 평가와 함께, 제법 입소문이 퍼져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내부고발자의 생생한 증언을 듣는 것처럼, 정말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고 나온 김재환 감독의 <트루맛 쇼>는 사실 통쾌했다. 감독 데뷔에 대한 관객의 평가 역시 일단 합격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일부의 비판. 조작 방송을 고발하는 영화가 온통 조작이었다는 것. 이 영화가 영화가 아니라는 논리가 개입하는 지점이다.

 

 

 

나쁜 뉴스를 현실로 만드니, 좋은 뉴스도 만들어 봅시다. <예스맨 프로젝트>

 

 

 

이 영화를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면 <예스맨 프로젝트>(2009)가 떠오른다. 연기까지 소화한 마이크 보나노, 앤디 비치바움 두 명의 용감(?)한 감독은 세계적 화학기업 DOW사의 가짜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고 획득된 정보를 이용, 관련 행사에 나타나는 퍼포먼스를 기획해 이를 영화로 만들었다. 더 예스맨The yesman 이라는 미국시민단체 회원이기도 한 감독은 ‘진짜 거짓말’을 통해 자본의 폭력과 허점을 꼬집어 많은 지지를 받았다. 20년 전 인류에게 충격으로 기억된 참사, 사상 최악의 산업재해 ‘인도 보팔 독가스 유출 사건’에 대해 아직 아무런 보상도 하고 있지 않은 DOW사(당시 유니언 카바이드, 2001년 DOW chemical 인수)를 겨냥한 감독은 직접 DOW사의 대변인을 사칭해 BBC에 출연, 120억불의 보상을 약속하는가 하면 투자 피칭 행사에 초대되어 엉뚱한 발명품으로 신자유주의의 비인간성을 마음껏 조롱한다. 그야말로 대형 조작 영화다. 관객과 평단은 물론 한편으로 위험한 헤프닝으로 상처받을 법한 피해보상의 당사자들까지 이 영화에 박수를 보냈다. 20년 전 인도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언제 어느 곳이건 다시 꺼내 보는 동안 현재를 들여다 보게 하는 영화의 힘. 영화가 걸어나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감독의 호소. 수많은 사람들이 내린 평가였다.

 

 

 

 

<예스맨 프로젝트>가 되지 못한 <트루맛 쇼>

 

 

가짜 식당과 가짜 홈페이지라는 미끼. 방송판과 신자유주의판의 부조리극에 직접 참여해 통쾌한 거짓말을 보여준 두 영화가 ‘조작’을 감행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는 듯 하다. 하지만 엇갈린 평가. 조작된 방송 시스템을 그대로 사용한 방식에 대한 윤리적 잣대는 의문이다. <예스맨 프로젝트>의 경우 천연덕스럽게 시스템으로 들어갔다는 점. 이는 <트루맛쇼>가 사용한 방법이다. 가짜 옷을 입고 그 목적이 시스템을 비웃는 의도라는 지점에서 동일하다. 또 하나. 방송에 나온 맛집은 맛이 없고 리얼 버라이어티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아는 사람이면 다 아는 얘기’를 소재로 전직 방송PD가 너무 손쉽게 (게다가 돈으로 다 때운 방식으로) 제작했다는 의견이 논란의 한 축이지만, <예스맨 프로젝트>가 다국적 기업이 초자본의 폭력을 휘두르고, 힘없는 계급은 어쩔 수 없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폭로한 영화라고 치환해 말한다면 또한 말문이 막히는 상황이다. 기획 과정에서 요구되는 윤리문제가 목적을 앞선다면, 비윤리적인 사건을 고발하기 위한 무수한 시사 프로그램의 함정 취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보호해야 할 피사체는 없다. 하고 싶은 말을 위해 온통 만들어진 것들을 놓고 한판 퍼포먼스를 벌였다 한들 무슨 문제가 될까. 보도 영상이 아닌 영화, 즉 보도 지침에 따라야 하는 기자가 아닌 작가에게 요구되는 (제작 과정에서의) 영화적 윤리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작품의 수준에 대한 비판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두 영화가 다른 점은 <트루맛 쇼>는 자본의 옷을 입고 자본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에 반해 <예스맨 프로젝트>는 자본의 옷을 입고, 반자본의 언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 차이점은 미국사회와 한국사회의 반응이다. 어마어마한 거짓말 공격을 받은 DOW사는 120억불 보상 헤프닝이 벌어진 1시간 동안 약 2조4천억 상당의 주식폭락, 사칭 건 등에 대응하지 않았고 MBC는 발빠르게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했다. 예상컨데 한국 기업을 상대로 국내 감독이 <예스맨 프로젝트>를 찍었다면 민사가 아닌 형사 재판에 세워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면 <예스맨 프로젝트>는 그 흔한 가처분신청 대상이 됐다는 얘기도 들은 바 없다. 미국사회가 열려 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오직 자본의 질서가 철저한 나라에서 영업이익의 막대한 피해에 대해 침묵할 기업이 있을 리 만무하다. 위험하지만 통쾌했던 거짓말로 피해 당사자들의 응원까지 이끌어낸 감성과 설득력, 즉 잘 만들어진 영화가 불러낸 여론의 힘이다. 그에 비해, <트루맛쇼>의 경우 (철저히 자본의 언어만을 사용) 한국사회 표현의 자유를 고려한 자기검열, ‘기껏해야 가처분 카드, 그나마 가능성 별로’의 판단이 계산된 그것이다. 마치 리얼 버라이어티를 보고 온 느낌.(실제 방송 영상을 짜깁기한 분량이 많기도 하다) 어쩌면 몰래카메라, 유머를 빼면 시사고발 프로그램, 사회성을 빼면 개그콘서트(영화에 삽입된, 맛집 프로그램마다 일색인 리액션을 소재로 만든 개그코너)라고 느껴질 만큼 영화의 크기는 작았다.

 

 

다만 아쉬울 뿐이다. <예스맨 프로젝트>비롯해, 모건 스펄록의 <슈퍼 사이즈 미>(2004)의 대책없는 자해 공갈, <볼링 포 콜럼바인>(2002), <화씨9.11>(2004), <식코>(2007)로 이어진 마이클 무어의 초대형 뻔뻔함이 아니어서 아쉽다. 그럼에도 소기의 성과는 이룬 셈이다. 영화는 상영됐고, 방송사는 지레 겁을 집어 먹었고, 관객은 배신감과 통쾌함에 손을 들어줬다.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 알려주겠다는 감독은 유쾌하게 잘 알려줬다. 다른 듯 같은 영화의 기획이 윤리의 잣대로 나뉜 비판과 영화가 아니라는 의견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다만 먹거리여서 놀란 관객에게 보다 커다란 충격과 울림을, 세상에 걸어 나와 영화의 힘을 보여준 슈퍼 뻥쟁이<예스맨 프로젝트>의 한국판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김재환 감독의 다음 영화를 볼 때까지 그 답은 어떤 의미에서 유보다.

 

(최성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