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컴,투게더
# 이 글은 비평 전문지, 제47호 독립영화(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에 송고된 글입니다.
[작품론] 오독되는 영화, <컴, 투게더>
<컴, 투게더>(2017)에 대한 오독 중 하나. 이 영화를 통해 보여준 희망에 대한 응원을 읽었다1) 이들에 따르면, '8년 만에 발표하는 장편<컴, 투게더>는 좀 더 원숙해지고 성찰하는 시선을 보여주고 있으며 영화의 마지막, 각자의 고투를 마친 세 가족이 누워 비를 맞는 장면에 이르러 비로소 긍정적인 메시지와 함께 우리를 끌어안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자본의 질서에 방치된 약자들과 편견에 고통받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영리하게 다뤄왔던 신동일 감독의 작업은 늘 기대되는 일이다. 첫 장편을 내놓은 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시대정신을 담은 영화는 세상을 풍부하게 한다’ 는 감독의 인터뷰는 그의 영화가 가질 설득력과 역할을 기대하게 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를 다룬 <방문자>를 시작으로 자본주의, 인종 차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우회적으로 풀어낸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반두비>는 장르적으로도 대중을 설득했을 뿐만 아니라 극영화가 끌어안을 수 있는 인권 선언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또한 영화는 현대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을 그리지만 그 결말은 염세적이거나 애써 희망하지 않았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감독의 감수성과 신중함을 동시에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컴, 투게더>를 보고 나서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영화의 결말은 앞서 언급한 김태훈의 비평과 김소희/백종헌의 인터뷰에서처럼 희망적으로 읽히지 않았다. 오히려 알 수 없는 위험이 감지했다.
영화는 경쟁에 내몰린 세 명의 가족을 등장시키고, 일주일 동안 이들에게 벌어지는 사건을 독립적으로 쫓는다. 18년을 근속한 직장에서 해고된 아버지(범구)는 집과 집주변을 배회하며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멀쩡한 집안 살림을 폐기하거나 권위적인 태도로 가족 내 갈등을 증폭시키는 등 생산적인 활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층간 소음을 항의하다 인연이 된 전직 시간 강사(호준)의 자살에 충격을 받고 벌이는 사건 속에서 심경의 변화를 겪게 된다. 어머니(미영)와 딸(한나)은 경쟁의 벼랑 끝에 서 있다. 신용카드 영업을 하는 미영은 실적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팀 내 유일한 경쟁자가 사고로 중상을 입게 되는 사건 한가운데 휘말리게 된다. 재수생인 한나는 올해도 예비 합격자가 되고 말았다. 순번을 기다리는 한나에게 유일한 해답은 합격자들의 낙오다. 같은 대학에 이미 합격한 후배(아영)와 연락이 닿게 되면서 위험한 상상이 한나를 괴롭힌다. 각기 다른 사건들이 동시에 파국으로 치닫는 동안 가족 안의 갈등 역시 절정에 이르고, 결말에 이르러 영화는 세 가족이 여행을 떠난 곳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세 가족은 그곳에서 서로를 다그쳤던 과거를 내려놓고 새로운 출발을 응원한다. 영화는 함께 비를 맞는 가족의 얼굴 위에 머물다가 문을 닫는다. 중산층 가족 사회극으로 명명되는 이 영화가 도처에서 보내는 메시지와 상징들. 세 명의 가족과 관계된 인물들이 대표하는 현대 사회의 욕망 혹은 유령들. 이 영화가 쌓아 놓은 성과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정리해보려던 노력은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길을 잃고 말았다.
다시 영화를 떠올렸다. 세상이 썩어가고 있다고 외치는 범구는 경쟁의 행렬에서 일찌감치 이탈해 모두가 분투하는 동안 홀로 경고를 날리던 인물이다. 이때 그는 선량하거나 정의로운 사람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썩은 냄새가 난다며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멀쩡한 꽃을 꺾고 베란다 밖으로 화분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한다. 그리고 그가 화분을 떨어뜨린 곳으로 호준은 끝내 낙하한다. 미영과 한나는 경쟁의 최전선에 섰다. 호준이 영화 내내 발설하던 ‘딱 요만큼이 부족한’ 상황에서 더 이상 앞서갈 방법은 묘연하다. 미영은 시종일관 무례한 태도로 경쟁자를 자극하며 뒤를 쫓고, 순번을 기다리다 지친 한나는 아영에게 접근한다. “딱 한 명만 죽어줬으면 좋겠다. 그래줄 수 있어?” 그들로부터 비롯되거나 혹은 상상하거나 목격된 타자의 죽음. 누군가 계속 죽어 나가도 아무런 표정이 없는 자본주의. 세 명의 인물이 발산한 살기는 거기 그대로 있고, 너무 성급하게 그 세상에서 빠져나와 있는 그들이 있다. 그들의 발걸음은 갈등이 해소된 자들의 것이기보다는 도피처럼 느껴졌고, 비가 내리고 있는 흙길에 넘어져 다같이 웃고 있는 모습은 안도가 아닌 체념에 가까웠다.
나아가 체념의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그들을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분명 오독이다. 이 영화에 대한 나머지 오독. 영화는 하릴없는 그들의 무례함을 평범함으로 의도했지만 그것은 살기로 읽혔고, 그럼에도 희망하라는 영화의 선량한 메세지는 절망적인 상상에 이르렀다. 영화의 성과들은 지워져 버렸고 상상은 정처 없이 흘러갔다.
영화가 좀 더 설명했어야 한다는 결론이 아닌 오독의 과정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쉽게 오독되는 영화들 속에서 무수하게 흩어지는 경고들. 그리고 영화 밖에서 여전히 쓰러지는 사람들. 그 모든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한 비평의 반성이다. 또한 ‘시대정신’이 너무 쉽게 클리셰가 되어 흩어지지 않기 위해, 신동일 영화가 더 힘을 내어 주기를 희망하는 호소다.
1) 김태훈, 〈경계를 향한 신동일 감독의 꾸준한 질문〉《씨네21》2017/05/18. 김소희, 백종헌,〈[people] <컴,투게더> 신동일 감독〉, 《씨네21》2017/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