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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군

몽상(최성규) 2024. 10. 30. 10:00

# 이 글은 월간 [예술부산] 2019년 9월호에 송고된 글입니다.

 

출처 : daum 영화

 

영화 <김군>의 어떤 선택

 

 

인물의 행방을 쫓는 장르물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 미해결 사건과 수상한 단서들이 부추기는 호기심. 누락된 증거와 새로운 증언의 등장이 가져다 주는 흥분. 끊임없이 해체되는 사실 관계들. 80년 광주 항쟁에 참여한 신원 미상의 시민군을 찾아나서는 <김군>은 이 같은 장르적 긴장감이 한껏 전개되는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어딘가 이상한 장면들이 있다. 영화의 동력에 제동을 걸고 머뭇거리거나 낯선 곳에서 서성거리는 듯한 순간들이다. 이 불안감은 김군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시신은 찾을 수 없다는 결론에 가까워지면서 더욱 커져갔다. 누군가를 찾기 위해 집요하게 시야를 좁혀가던 에너지가 힘과 방향을 잃었을 때 이야기는 멈추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갈 무렵 <김군>은 익숙한 장르물의 공식으로 설명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부에 놓인 이 영화 중 가장 낯설고 극적인 장면 때문이었다.


김군 찾기의 추동력이 주춤하는 순간은 이런 장면들이다. 영화의 전반부. 김군 찾기를 촉발한 ‘사건’이 소개되는 부분이다. 사건은 다음과 같다. 보수 논객 지만원은 시민군들이 찍힌 사진 중 특정 인물을 북한군으로 지목하고 이들을 ‘광수’로 명명한다. 기하학적 분석(?)을 통해 ‘김군’을 제1 광수로 지목하고, 같은 방법으로 총 561명의 광수를 찾아냈다고 주장한다. 이는 광주 항쟁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근거로 활용된다. 사진 속 얼굴의 ‘중요한 포인트를 연결한 외곽선이 일치‘한다는 지만원의 기하학은 물론 터무니없는 것이다. 하나의 사진 이미지에 담긴 시점과 화각, 광학적 이미지 분석의 기초가 되는 사영 혹은 투영의 원리와 과정을 무시한 채 단순히 이미지의 형상만을 비교할 순 없다. 김군이 제1 광수가 되는 근거엔 다른 이유도 있다. “이 사람은 분명히 이 눈초리가 아주 엄청 매섭고, 광주 학생이 낼 수 있는 포즈도 아니고, 어깨 골격의 생김새라든지 눈초리라든지……” 실소를 자아내는 이러한 논리들이 과연 김군을 찾아야 하는 동기가 될 수 있을까. 오기철(희생자 시신관리)과의 대화에서는 이 같은 의문이 좀 더 명확한 언어로 전달된다. 김군으로 제보된 오기철은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그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당시를 회상하던 중 상기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이해가 안 돼. 우리가 이걸 증명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바꿔 말하면 그 말 아닌가. 모르는 사람은 객관적으로 뭔 일이 있긴 있나보다 할 거 아닌가.”제보를 통해 찾아간 인물이 오히려 이 작업을 멈춰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영화는 단호한 그의 표정과 질문을 피하지 않고 남겨둔다. 굳이 언급한 장면이 아니어도 그런 순간들은 번번히 끼어든다. 제작진과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웃거나 이에 화답하는 시간들. 그런 순간엔 김군을 잠시 잊게 된다.

 

 

출처 : daum 영화

 

<김군>의 결말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다리 밑 넝마주이였던 그는 5.18의 한가운데 던져지고, 시민군으로 투쟁하는 동안 가장 ‘존재’했으며, 꽃다운 나이에 끝내 사살되었다. 시신은 계엄군에 의해 처리되고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그의 죽음은 89년 청문회에서 최진수(시민군)에 의해 이미 증언되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물론 이 결말의 울림은 적지 않다. 김군은 세상을 떠났고, 넝마주의들과 다리 밑 천막도 그날 이후 모두 사라졌다. “그런 것들은 근거를 안 남겨. 항시 없애버”리는 한국사회의 잔인함이 겨냥한 존재들.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래된 기억과 추정에 따른 이 결말의 진위는 믿거나 그렇지 않을 뿐이다. 소위 태극기 부대와 지만원의 고함소리는 여전히 높고, 희생자들과 유가족은 아직도 표류하고 있다. 생존자들의 상처도 아물지 않았다. 이들을 횡단하며 ‘그날’을 묻던 영화가 내놓은 결말이 여기까지라면 <김군>는 실패한 장르였다. 김군은 누구인가를 물을수록 그 질문으로부터 멀어지는 이상한 영화적 선택들, 여전히 차갑게 카메라를 응시하며 멈춰있는 김군의 표정은 아직 할 말이 남은 것 같았다. 


이제 이 글이 시작된 장면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영화관 씬이다. 그날의 사진들이 반복해 상영되고 있는 텅 빈 극장에 최진수가 홀로 앉아있다. 그는 계엄군에게 총살되는 김군을 목격했다. 30년 전 청문회 그리고 30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숨을 고르며 김군의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이었다. 눈을 감은 채 의자에 기댄 최진수를 향해 이강갑(김군으로 제보된 시민군)과 최영철(시민군)이 찾아온다. 이들은 김군의 마지막 발걸음이 될 광주 송림동으로 향하는 트럭에 함께 탄 동지였다. 감독은 세 명의 시민군을 38년 만에 만나게 했다. 그런데 그들의 동선은 어떤 약속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진수는 홀로 이들을 기다리고, 이강갑과 최영철은 약간의 시간을 두고 영화관에 입장한다. 자리에 앉아있던 최진수가 이강갑이 도착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한다. “살아있으니까 만나는 것 같습니다”악수를 한 둘은 나란히 앉고, 잠시 후 마지막으로 영화관에 들어오는 최영철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살아계셔서 감사합니다”이 장면은 영화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이다. 최진수는 마치 이야기의 주인공인 것처럼 그들을 맞이한다. 최진수와 김영철의 만남은 좀 더 설명할 필요가 있다. 최영철은 앞선 인터뷰에서 최진수에 대한 기억을 꺼내놓는다. “내가 크게 의미를 둔 사람은 최진수 거든요. 그 사람만 거의 머리 속에 뱅뱅 돌아요. 약간 어리숙하고... 화들짝 놀라고... 내가 상당히 짠하게 생각했던 사람인데...”최영철이 등장하는 순간 최진수는 38년간 준비해 온 것 같은 인사말을 건넨다. 살아계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 daum 영화

 

어쩌면 이 장면이 영화의 다른 결말이 아닐까. 내내 묻고 관찰하던 영화가 유일하게 개입한 순간이었다. 그 곳엔 살아남은 김군을 영화에 등장시켜야 한다는 몸부림 같은 것이 있다. 영화의 개입이 어디까지였는지 알 수 없지만 최진수는 김군을 대신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김군>은 텅 빈 영화관에 그들만의 시간을 남겨두고 빠져나온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김군을 묻지 않아도 될 일말의 안도감을, 말없이 영화관에 앉아 있는 그들과 스크린 속 사람들에게는 살아계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겨둔 채 문을 나선다. 이 시간이야말로 이 영화의 장르가 완성되는 순간이 아닐까.

 

한번 충격을 줬다가 이내 분노를 일으키게 만드는 이미지가 넘쳐날수록 우리는 반응 능력을 잃어가게 되고 연민이 극한에 다다르면 결국 무감각에 빠지기 마련이라는 수전 손택의 말. 우리는 끔찍했던 그날의 기록이 더 잔인하게 폭로되고 타인의 고통조차 소비해 버리는 시대를 살아간다. 참혹한 역사를 우회해 공식적인 기록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찾아 나선 제작진은 그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말과 오늘의 시간을 담아냈다. 그리고 출구를 찾아 조용히 짐을 챙겨 빠져나가고 있다. 이 영화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고마움을 남겼다면 그것일 것이다. 언젠가는 그날의 그들도 모두 세상을 떠나겠지만 이 영화는 남게 될 것이다. 

 

최성규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