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3회 인디포럼 영화제에 송고된 글입니다.
[프로그램 노트]
영화는 누군가의 꿈이다.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하고 꾸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도 미래도 아닌 곳에 꿈이 있다. <준비됐나요>의 시간은 모호하다. 지구를 탈출하기 위한 장비를 한껏 짊어진 사내가 걷기 시작해 예정된 장소에 도착하고 끝내 뛰어오르는 짧은 순간일 수도 있다. 아니면 잠들어 있는 영화감독 지망생의 꿈 속이거나 준비 중인 동명의 시나리오일 수도 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실재하는 시간을 찾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하루키의 루틴이라고 적힌 알람이 울리면 부스스하게 일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시나리오 작법서를 가방에 넣고 시작하는 하루. 하지만 고다르나 트뤼포가 되지 못한 채 하루를 마감하는 어디쯤에 영화의 시간이 있다.
주인공(백호)은 지구를 떠날 준비를 한다. 지구 탈출을 앞둔 백호의 어깨는 왠지 쓸쓸해 보인다. “새로운 시도는 이미 선배들이 다 했어. 꿈을 밀고 나가는 것도 용기지만 꿈에서 깨고 다른 꿈을 꾸는 것도 용기”라는 선배의 충고는 아프기만 하다. 힘없이 돌아오는 길. 백호는 폐업한 야구 연습장 앞에서 친구를 만난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두더지 게임을 두드리며 멋쩍게 웃는 이 장면은 이상한 온기를 담고 있다. 작별인사를 하려는 걸까. 그렇다면 이 친구는 누구고 떠나는 자는 누구란 말인가.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의 쓸쓸한 어깨에 내린 온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을 설명하는 말이다. 백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좋아한다. 이 영화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는 그를 향한 동경이 거기 있다.
영화로부터 떠나려는 것일까. 하지만 이 이야기는 영화가 되어 우리 앞에 도착했다. 감독은 연출 의도에서 꿈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허무맹랑과 절망 사이’라고 했다. 누군가의 꿈이었던 <준비됐나요>는 허무맹랑과 절망 사이에 있다. 영화는 지구를 떠나기 직전에 멈추고 말았다. 어떻게 될까. 백호는 날아올랐을까. 아니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말처럼 “의미 있는 죽음보다 의미 없는 풍성한 삶을 발견”하기 위해 내려올까.
(최성규/한독협 비평분과)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서산 개척단 (1) | 2024.10.30 |
---|---|
[단편선] 김정은 감독 (1) | 2024.10.30 |
[영화] 지옥문 (0) | 2024.10.30 |
[영화] 컴,투게더 (0) | 2024.10.30 |
[감독] 박종필의 6개 씬 (0) | 2024.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