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18 독립영화 쇼케이스 기획전(주관: 한국독립영화협회)에 송고된 글입니다.
[쇼케이스 리뷰] 김정은 감독 단편선
한 작가의 단편선, 특히 아직 장편을 발표하지 않은 작가의 단편을 모은 기획은 흥미로운 작업이다. 어딘가 고백적이고 함축적으로 읽히는 문장들. 반복되는 단어, 정념. 혹은 루틴. 이를 발견하거나 찾는 일은 비평의 토양이자 과정인 동시에 한 작가를 기억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김정은의 영화는 사적이면서 디아스포라적이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감독과 동시대를 살아간다. 그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다른 누군가가 그 빈자리를 대신한다. 때로는 자리를 바꾸는 서로를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기도 한다. 이 움직임은 너무 조용하다. 마치 모두가 떠난 텅 빈 공간을 뒤늦게 찾아온 것 같은 쓸쓸함이 있다. 세 편의 영화 <우리가 택한 이 별>, <야간근무>, <막달레나 기도>에는 조용히 순환하는 세계가 있다.
<우리가 택한 이 별>의 배경은 노량진이다. 영화 속 노량진은 가난한 고시생들의 도시다. 누비 한 옷차림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어느새 육교에 걸린 일몰. 홀로 밥을 먹는 사내. 이 도시를 멀찌감치 바라보던 영화는 고시원으로 안내한다. 좁은 복도를 지나 방에 도착한다. 방에는 떠날 채비를 하는 여인이 있다. 그녀는 벽에 한가득 붙여놓은 메모와 사진을 떼고 창문으로부터 쏟아지는 햇빛을 마지막으로 응시한다. 이를 꼼꼼하게 묘사하던 영화는 여인을 따라 고시원 밖으로 나선다. 영화는 특별한 서사도 갈등도 보여주지 않는다. 고시원에서 서식하는 청춘들은 각자의 방안에서 고단한 하루를 마감한다. 창문이 있는 방은 월세 오만원이 추가되지만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노량진을 닮아가는 남자, 고단하고 지쳐가는 연인, 도무지 가망이 없어 보이는 취준생. 무채색의 실루엣들이 고시원의 좁은 복도를 지나 각자의 방문을 닫는다. 또다시 육교에 해가 걸린다. 어스름 속을 달리는 버스의 헤드라이트. 좁은 골목의 가로등. 미화원을 향해 흩뿌려지는 쇼 윈도. 도시가 간직한 빛이 전시된다. 영화가 묘사하는 도시의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기만 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거가 없다. 미래는 오지 않고, 오직 현재를 실행하는 존재처럼 보인다. 영화의 초반부, 애써 먼 길을 돌아 고시원에 도착한 영화는 다시 뚜벅뚜벅 나선다. 골목길을 지나고 육교를 걸으며 왔던 길을 다시 가고 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는 여인을 그저 따라간다. <우리가 택한 이 별>의 모든 것은 노량진의 풍경이다. 웅크린 도시가 해가 뜨고 저무는 일을 반복하는 동안 누군가는 소리 없이 떠날 채비를 하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빈자리에 찾아든다.
<야간근무>는 <우리가 택한 이 별>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의 서사처럼 느껴지는 영화다.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 여성 린과 한국인 연희는 같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연희는 한국을 떠나려고 한다. 어디든 이곳을 떠나면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린은 오직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 한국에 와 있다. 린은 연희의 계획을 이해할 수 없다. 연희는 자신과 비교해 더 나은 조건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많기 때문이다. 영화는 떠나온 린과 떠나려는 연희를 번갈아 바라본다.
김정은의 영화를 디아스포라적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그의 영화에 흘러 들어와 떠나는 사람들은 생존에 해당하는 이유로 쫓겨 다니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우리가 택한 이 별>의 고시생과 취준생, <야간근무>의 연희는 디아스포라 혹은 유목적, 노마드적이라고도 선뜻 말하기 어렵다. 그저 뚜렷한 욕망이 없고 끊임없이 불안한 현대사회의 얼굴일 것이다. 감독은 <야간근무>에서 이주 여성노동자 린을 통해 한국 사회에 방치된 청춘들의 디아스포라 diaspora(흩어짐)을 이해하려고 한다.
김정은 감독의 신작 <막달레나 기도>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다. 이전 작품과는 다른 형식과 소재를 다룬 새 영화는 감독 본인의 할머니이자 홀로 사는 노인 정숙의 일상을 지켜본다. 이른 아침, 정숙은 성경을 읽고 공공근로에 나갈 준비를 한다. 또래의 동료들과 일을 하다가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낸다. 그들의 대화는 또 다른 누군가의 안부와 자식들 이야기뿐이다. 정숙은 성당을 찾는다. 기도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낮잠을 청하는 정숙의 뒤를 내내 쫓던 영화는 어느새 햇살이 가득한 텃밭으로 안내한다.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감독이 그곳에서 평화로운 오후를 보낸다.
하루를 평온하게 담던 영화는 정숙의 방안에 설치된 CCTV가 등장하면서 약간의 긴장감이 스며든다. 어딘가 생기를 잃은 할머니와 지나치게 정돈된 방 안의 풍경들. 별다를 것 없는 안부가 통신망을 너머 공허하게 닿는다. 사생활 침해 여부를 두고 엄마와 벌인 토론은 이내 증발하고 만다. 엄마에게 설득된 것일까.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와 그 자리를 대신할 엄마. 만져볼 수 없는 거대한 생의 순환이 목격되는 순간이다. 영화는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세 모녀를 조심스럽게 비춘다.
영화 속 인물들은 행선지를 알 수 없는 막차에 오르고, 다시 첫차를 기다린다. 그리고 매 순간 그들의 기도가 있다. 김정은의 영화에는 기도하는 장면이 빠지지 않는다. 영화는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끌어들이지만 성급하게 결론짓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선언인가 하면 기도였구나 싶은 순간들. 감독은 순환하는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관조한다.
세 편의 짧은 영화는 순환하며 확장된다. 지리적으로 확장되고, <막달레나 기도>에 이르러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거대한 생의 순환을 포착한다. 노량진, 코리아, 할머니.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세 개의 단어가 각자의 영화 속에서 디아스포라의 세계로 인식되고 확장되는 체험의 끝에 ‘김정은’ 이라는 작가가 서 있다.
최성규 (한국독립영화협회 / 비평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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