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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옥문

몽상(최성규) 2024. 10. 30. 09:53

# 제23회 인디포럼 영화제에 송고된 글입니다.

 

[프로그램 노트]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 질문의 답은 쉽지 않다. 질문이 철학자의 손에 쥐어져 있다면 그 해답은 존재에 대한 심오한 사유를 경유할 것이다. 하지만 일상의 모처에서 요구받는 본인인증이라면 어떨까. 준비가 안된 곳에서 접근하는 웹사이트 혹은 낯선 공간이라면? 복잡한 코드와 알 수 없는 기호로 증명해야 하는 수많은 인증 프로그램 속  역시 간단하지 않다. '본인'과 관련된 수많은 개인 정보를 매칭하고 처리하는 알고리즘은 더욱 복잡하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오류가 발생한다. 고도화된 정보 처리 시스템의 예측 불가능한 오류에 대한 공포는 다양한 예술 영역에서 흔한 소재로 등장한다. 또한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디버깅 작업은 논리적인 언어를 수단으로 주체와 객체(존재)를 규정하고 난무하는 함수(세계)를 새롭게 정의한다는 점에서 철학의 영역이라는 해석도 있다.

 

영화는 이 같은 상상에서 출발한다. 돌연 죽게 되는 주인공은 지옥행 여부를 심판하는 자리에서 연쇄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쓰게 된다. 이를 바로잡으려는(자아를 찾으려는) 노력이 절차적 모순에 빠지고, 전생의 범죄였다는 (세계적) 모순에 이르면 깨어나 임사체험이었음을 알려준다. “실재하는 것만으로는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연출 의도의 무게감에 비해 다소 가벼운 내러티브일 수 있지만 짧은 시간 동안 지옥에서 벌어진 본인인증 해프닝이 상상하게 하는 담론들은 가볍지 않다. 심판관의 최종 선고가 지옥행으로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 현실 세계에 와 있는 결말은 웃지 못할 농담 같다. 배경이 되는 지옥은 메탈릭 한 이미지들과 로토스코핑 기법의 캐릭터를 통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위트를 담은 공간으로 그려냈다.

 

(최성규/한독협 비평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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