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휴가를 끌어다 쓴 것도 아니고 한가한 것도 아닌데 9일 휴가를 선언하고 떠난 곳. 태국.
주말 앞 뒤로 붙이면 겨우 5일 휴가였다. 일주일 전 결재를 올려 하루 전 승인이 났다. 결재가 안나면 무단결근이 불가피했다. 하루 전 승인의 사연 인즉, 유례가 없고 회사 분위기 문제를 이유로 생각을 해봐야 한단다. 생각하시느라 애썼겠다. 비행기표는 한달 전에 끊어놨고 난 취소할 생각이 없었는데.
위기였다. 사는게 시시해서. 뭐든 자극이 필요했다. 일단 짐싸고 떠나기로. 자전거, 도보로 한국 종/횡단/side road 완주를 끝냈고, 무인도 서바이벌까지 마친 뒤다. 기타를 메고 제주도도 돌았고. 이제 다음 여행은 물을 건널 수 밖에 없다. 왜 태국? 히피의 섬 꼬창. 로망 길거리 연주여행의 멤버가 꾸려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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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 금요일.
기타와 등짐을 메고 끈적한 태국에서 버릴 거지같은 겨울 옷을 입은 채 출근. 그리고 공항으로 퇴근.
밤 9시 반 방콕행 비행기. 비행기를 처음 타는 것도 아닌데 긴장된다. 해외 출장에서는 절대 느낄수 없는, 여행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
... ...
... 이지만 방콕에 도착하자 마자 잃어버린 내기타ㅜ
한참만에 나온 기타는 포장만 똑같은(공항에서 꼭 박스 포장해야 한다고.. 2만 오천원이나 주고 맡긴거라 모든 기타는 똑같은;;) 다른 기타가 들어있었다. 내껀 어쿠스틱, 그 자식껀 일렉.. 앰프가 없으면 짐만되는 그 자식껀 공항에 맡기고, 끝내 출국하는 날까지 내껀 나타나지 않았다. Orz
아침 5시까지 기타를 찾기 위한 소동을 벌이다가 포기.
그리고 처음 태국을 만났던 거기. 카오산 로드.
문제는 새벽 5시라는 거다. 한국의 홍대라 해도 그 시간까지 살아남은 취객은 볼만하지 않나. 전세계 취객은 다 모여 난리, 한편으론 소란스러운 풍경이지만 곳곳에 거리연주와 춤이 있다. 혈중 알콜이 그들과 같았다면, 기타만 있었다면 글로벌 양아치들과 어깨를 걸었을텐데.. 아우.
곧 해가 뜨고 소란스러움은 일시에 사라진다. 카오산의 아침은 밤새 무슨일이 있었는지 영문을 모르는 얼굴을 하고있다. 절대 문을 닫지 않는다는 간판과 함께, 밤의 선수들이 물러나면 아침을 기다린 수행자와 같은 여행자를 만날 수 있다. 전세계 베낭여행자들이 몰려드는 태국. 욕망과 수행이라는 두개의 얼굴을 가진 나라.
Ann paw 와 Tawan Pongphat 집으로 이동. 법을 공부하는 Ann과 영화, 음악 활동을 하는 Tawan은 연인이다. 너무나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그들.. 세계 인권활동가 대회에서 만난 인연이었지만, 조금은 갑작스러웠을 연락에도 흔쾌히 우리들을 맞아주었다. 고맙게도 하루밤 신세를 졌고, 한국의 해금을 소개.^^
여기서 일행에게 free 선언. 너무 아쉬웠지만 낯선 곳 혼자 여행을 포기할 순 없다. 4일간 누굴 만날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잠시후 13시간 야간열차, 태국의 북쪽 치앙마이로.
설렌다. 치앙마이도 궁금하지만, 이 기차에서 내려 말도 안통하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보낼 며칠이 궁금해 미칠것 같다. 그런데 13시간이라니.. 시간이 지날수록 심심하다...
이렇게 갈 순 없었다. 말을 거는 거다. 영어가 안되면 손발을 써서라도 얘길하고 친구가 되어야 한다. 숨쉬는 것도 아까운 시간이니까.
훔쳐만 보던 옆자리의 모녀는 방학을 맞아 태국 전통우산을 만들어 파는 부모님 댁에 가는 길이었다. 치앙마이의 변두리에 위치한 싼깜팽. 한국을 전혀 알지 못했지만 영어는 조금. 10살, 11살. 너무 귀여운 두 아이의 엄마 Preeyron 는 흔쾌히 합석해 태국을 소개해줬다. 태국의 아름다움은 대도시 방콕도 아니고, 리조트가 즐비한 허니문 섬도 아니라고 했다. 변두리. 국경지역에 펼쳐진 대자연, 욕심이 없는 서민들을 보고 가라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머무는 동안 하루쯤은 집에 들러 자고 가라는 친절을 보여줬다. 태국의 음식을 만들어주고, 가족들을 소개해주겠다고. 하지만 몇번이고 계획을 들여다봐도 무리였다ㅡㅜ
그리고 또 다른 인연. 내 모든 동선과 계획이 일치해 한배를 탔던 한국인 여행자.
13시간의 기차에서 단연 눈에 뜨이는 인물(왼쪽)이었다. 여행내내 일본인이 다가와 인사를 하더라는 이 재패니쉬 스타일의 소유자는 일찌감치 잠에 빠진 기차에서 혼자 날아다녔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어깨를 걸어댔다. 태국인이건 여행자건 깨어있는 사람을 모아 진행을 하는거다. 박지성 응원가가 객실을 채웠고, 가방에서 코리안 위스키 참이슬 병이 계속 나왔다. 오호. 재밌어지는데.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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