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6일 오전 08:00 경
치앙마이 기차역. 방콕의 기차역과는 사뭇 다르다. 기차에서 쏟아진 사람들이 서둘러 어디론가 제 갈길을 가는 대도시의 풍경과는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마중나왔을지 모르는 누군가를 찾는 사람들, 기다렸던 사람을 만나는 사람. 숨을 돌리며 나 만큼이나 낯선 나라의 로컬을 궁금해하는 여행자들.
어쨌든 나는 갈 데가 있었다. 여행 중에 예약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지만, 헤메고 다니기엔 아까운 시간이다. 숙소 예약은 오늘 하루 뿐이었다. 첫날은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으니까. 그리곤 정보가 필요했다.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게스트 하우스 '미소네'를 가는게 첫 미션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빨간 택시(?), 썽태우를 잡고 말을 해야 한다.
"음.. 웨어.. 미소네? 음.. 두 유 노 코리안 게스트하우스? 코리안 레스토랑 미소네? 음.. 님만 혜민 쏘우 젯? (거기 태국말 주소)"
신기하다. 안단다. 모를리가 없겠지 싶은데도 그런게 그렇게 신기하다. 오옷.
첫 미션 석세스. 그냥 쓩- 왔다. 아무리 외국이라지만, 다 커 가지고 어디 찾아가는 걸 가지고 벌벌 떨고 그런게 좀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뭐든 부딪혀보면 생각보다 별 것 아니라는 진부한 사실.
# 게스트 하우스는 하루밤 150바트(한화 약 6,000원/도미토리). 한방엔 6명이 1,2층으로 지내도록 되어있고, 남녀가 함께 사용한다. 한식 레스토랑을 동시에 운영하며, 교통편, 투어, 트레킹 등 여행사 대행 업무 처리도 가능하다.
좀 졸립고. 밤새 기차에서 잠을 잤는데도 나른하다. 잠시 쉬는데도 이내 심심하다. 비행기타고 멀리까지 와서 누워있는 건 말이 안된다는 명령이 자꾸 몸을 다그친다. 지도는 거의 외울 것 같은데도 또 들여다 보고, 혼자 피우는 담배는 맛이 별로다. 기차에서 만난 사람이 근처에 숙소를 마련했다는데. 거기 놀러오면 여행하다가 만난 사람들 소개시켜준다는데. 가볼까.
슬슬 걸어가니 금방 찾은 방카오. 잠깐의 인사가 이웃을 둔 든든함을 준다. 뭐가 들었을지 모를 꾹꾹 눌러 담은 등짐들. 어디서 누굴 만나도 그들의 여행의 기록, 살림살이가 담겨있을 묵직한 짐들을 보면 정겹다. 빡빡한 일정이라 치앙마이는 단 하루만 머무르기로 했던 계획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일부터 우리 1박2일 트레킹 갈거예요. 같이 가요." 트레킹? 그것도 다른 숙소에 사람들과? 내가 있는 숙소의 사람들과 아직 인사도 못했는데. 함께 가자는 별 것 아닌 한마디가 고맙고,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런 것이다. 여행이 관광과 달라지는 순간은 계획한 것에서 벗어날 때부터다. 아니. 그래야 하는 것이다. 작은 인연과 감정들이 팽팽한 계획에 구멍을 만들면, 그때부터 재밌어지는 것이니까. (치앙마이가 아닌 다른 곳이냐, 트레킹이냐, 트레킹도 누구와 함께냐, 기차에서 만난 태국 모녀. 집에 와서 하루밤을 지내고 가라는 초대까지 머리 속이 복잡했다. 어떤 것이든 설레는 일이다. 낼 아침까지 고민을 남겨두기로 했다. 이렇게 행복한 고민이라니.)
자전거를 빌려 치앙마이를 둘러보기로 했다. 치앙마이의 시내는 변두리까지 반경 10km 정도면 갈 수가 있는 규모다. 성곽과 물길이 중심부를 둘러싼다. 그리고 한국처럼 4개의 큰 문이 동서남북으로 뚫려있다. 4대문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어 있고, 곳곳에 사원이 있다. 금빛 화려한 건축물 인상적. 여긴 95%가 불교인 나라라는 걸 실감한다.
# 태국은 집이든 가게든 작은 제단이 하나씩은 다 있다. 건물 밖이 여의치 않으면 식당 한 구석에 초나 향이 켜져있는 걸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스님에 대한 예의는 깍뜻하다. 태국인들에게 합장을 하며 인사를 건네면, 누구든 발을 모으고 답례를 하는 예의를 보여준다.
그리고 생존이 있다. 어딜가나 금발의 관광객을 볼 수 있는 관광의 나라. 금발 뿐이겠나. 골프, 섹스 관광이라는 말을 붙이는 한국인 단체관광객도 있을테지. 인천공항에서부터 태국행 비행기에 같이 오르던 골프채와 노스페이스, K2 의 한무리들도 이 곳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괜한 날을 세울 필요는 없다. 삶의 모습은 다양한 것이니까. 하지만 눈을 피하거나 혀를 차지는 말자. 물건을 깎는 일도 필요하지만 누군가의 노동을 싸게 사는 행위라는 것도 잊지 말자. 인간의 땀에서는 같은 냄새가 나고, 물건을 팔고, 발가락을 붙잡는 노동에도 세계가 있다. 아이를 안은 무표정의 어머니 사진을 찍고 나서 흠칫했다. 동의를 구하지 않아서, 죄송하다는 말을 할 자신이 없어서 최대한 정중하게 합장을 했다. 그리고 우유를 하나 샀다. 아마도 괜찮다는 웃음이었을 거라고.. 자위하지 않았다면 자리를 떠나지 못했을 순간..
하루가 끝나간다. 거리의 가판대도 불이 켜지고, 밤을 기다린 사람들이 하나둘 밤거리를 채운다. 오늘은 일요일. 치앙마이의 일요일은 큰 규모의 시장이 열린다. 일명 썬데이 마켓. 선물같은 건 안 살 작정이었는데 저렴하고 예쁜 옷과 악세사리, 먹거리들을 지나치기가 어렵더라. 애인이 생기면 선물해 주고 싶을 치마 하나를 샀다. 물론 엄마 선물이다ㅎㅎ 아. 아빠. 아. 회사 인간들. 선물이 많아진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선물? 없어ㅋ
하루종일 걷고 자전거를 밟은 피곤과 허기가 몰려온다. 그리고 아주 잠깐 외로움. 서로 엇갈리며 도시를 탐험한 여행자들도 서로를 찾기 시작했고^^ 재패니쉬 스타일 친구도 한나절 발품을 팔다가 녹초가 되어 나타났다. 하루종일 말을 별로 못했는데 한국말이 이렇게 반갑다. 그 얼굴 보자마자 결정. 태국의 산과 고산마을, 또 다른 출발과 끝맻음을 체험하게 해 줄 시간. 팀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게 될 친구들과 다른 나라의 여행자 생각에 갑자기 설렌다. 결정했다.
'내일은 이 친구들과 트레킹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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