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08:00 경
너무 잘 잤다. 몸은 피곤했고 술까지 먹었는데도 너무 가뿐했다. 공기가 좋아서 그랬나. 아. 잠시 뒤척인 기억이 난다. 아직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백인 노무 자슥이 취해서 소리지르고 울고 하는 통에 나가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니가 한국말만 했어도 형이 얘기들어 줄 수 있는데. 암튼 걸레인지 이불인지 모를 것을 덮고 자도, 비가 왔다면 대위기가 왔을 그런 곳이었어도, 업어가도 모를 밤이었다.
장작을 패고, 불을 피우고, 식사 준비를 한다. 평화로운 아침 풍경. '아.. 일어나야 하는데.. 출근.. 몇시야..' 몽유병 환자들처럼 아침을 맞는 도시인들과 비교할 수 없는 건강함과 평화로움에 압도.. 전시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마음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다. 왜 고단하지 않겠나. 저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삶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밤새 안부를 확인하고 각자의 아침을 응원하는 이웃이 있고, 가슴에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빼꼼하게 눈을 뜨고 있지 않나. 동정은 집어 치웠다. 왠지 숙연해지는 아침의 생명력.
그래. 그러면 되는거다. 전시된 사람들이라는 어설픈 감상으로 굳어버린 내가 우스워졌다.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는다고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트레킹을 함께 하고 있던 한 친구의 아침. 목에는 수건을 걸치고 슬쩍 다가가 앉은 편안함.. 어떤 보석같은 메모가 담겼을지 모르는 노트와 펜을 쥔 손은 너무나 예뻤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그 어떤 말보다도 정겨웠을 눈인사. 무릎꿇었다. 그렇게 굳어버린 내게 그 어떤 충고보다 강한 메세지를 전해주었던 장면. 여행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 귀한 사진이다. 사회복지사의 길을 가려는 친구. '사람'이 빠져있는, 서비스가 되어버린 복지를 다시 생각하기 위해, 지금은 인도의 어느 곳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단다. 여행할 줄 아는 그녀. 그녀의 꿈을 응원한다. 화이링.
자 다시 출발. 어제 그렇게 행군을 했는데 또 걷는다. 죽을 만하면 차에 타라고 하니 다행. 물어보지 않으면 도통 어딜가는지 모르겠다. 하긴 물어봐도 마찬가지다. 영어.. 쉬운 영어라도 발음의 장벽.. 그냥 설마 납치는 안하겠지 한다. 오. 코끼리.
코끼리를 탔다. 그 육중함이 걷는 모습이란. 느린 움직임은 시간을 인내하는 종교 의식처럼 보인다. 어미를 따르던 아기 코끼리의 미래가 보여서 또한 안쓰러운 노동이 걷고 있다. 근데 그 건조하고 딱딱한 피부.. 털.. 아니 그건 가시였다. 바나나를 줬더니 지나던 코끼리까지 난리가 났다. 코.. 콧물과 가시의 압박.. 아.. 안 탈려고 했는데.
뗏목타기.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얼굴만 탔다. 그래도 신기한 캐릭터들은 어떻게든 재미있는 걸 찾아낸다ㅎㅎ 사진을 찍다가도 웃고, 세상에서 물수제비 제일 못 뜨는 누군가에게는 내기를 건다. 두 번 튀기는 거 할 수 있다 없다.. - -;
또 이동. 유쾌함 그 자체인 이 친구가 없었다면 트레킹이 어땠을까. 칠레의 매력에 푹 빠져 계시는 동안 잽싸게 사진을 찍었다. 난 이걸 찍고 센스쟁이가 됐다. 칠레가 대세였다.
이번엔 급류타기. 프로그램이 많다. 한시간 정도씩 바꿔가며, 것도 바쁘다ㅋ 절기상 건기라 물이 많지 않아 급류를 탄다기 보다는 바위에 걸린 보트를 꺼내는 게 중요했다. 노 젓는건 왜 그리 힘든지ㅎㅎ
waterfull. 한낮의 더위에 몸을 잠시 식혔다. 이렇게 보니 일본 온천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일본 친구도 함께였다.ㅎㅎ
저 친구. 무얼 저리 골똘히 생각을 할까. 했는데 잔다.
모든 트레킹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피곤이 쏟아졌고, 왠지 모를 아쉬움..
배가 고팠다. 너무너무 맛있었던 삼겹살.. 고기는 역시 굽는 돼지고기라는 육식 동지와 함께. 돌에 굽는 삼겹은 왜 그리 눈물겹게 맛있는지. 마지막 만찬, 마지막 밤이었다. 이제 이 친구들과 헤어질 시간. 마지막 저녁을 먹고 나면 곧 방콕을 가야 했다. 단 며칠밖에 되지 않은 시간인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너무 즐거웠고, 고마웠어요 다들. 남은 여행 건강히.
현재 21시 30분. 방콕행 9시간 야간 버스다. 아쉬움과 작별하고, 잠시 떨어졌던 일행과 상봉을 해야한다. 부디 그래야 한다.. 떨어진 일행과 연락을 할 수 있었던 핸드폰은 단 한개였다. 그걸 잃어버렸단다. 연락이 안되는 그들은 4일간 도대체 어떻게 지낸거냐. 한국의 누군가와 중계를 해야했다. 살아있긴 있다는데ㅋ
아침이 오면 헤어졌던 일행과 무사히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히피의 섬 꼬창으로 간다. 그렇게 아쉬움과 설레임이 교차하는 시간. 하루를 정리하고 아침을 기대하는 야간버스. 다시 새로운 곳으로 가는 중이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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