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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른이 되면

몽상(최성규) 2024. 10. 29. 13:11

# 공동체 상영회(주관: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에 송고된 글입니다.

 

출처: 트위터, '생각많은 둘째언니'

 

평화롭고 단호한 음악, <어른이 되면>


온종일 분주한 도시에서 느지막한 시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자매가 있다. 함께 이사할 집을 알아보고 또 어떤 날은 미용실에 간다. 언니(혜영)가 난생처음 친구 결혼식 사회를 보던 날, 장애가 있는 동생(혜정)이 활동보조 등급 심사를 받던 어느 날도 그녀들은 함께 한다. 12살 때 장애인 수용시설로 들어가 18년간 떨어져 살았던 혜정과 이 영화의 감독 혜영이 한 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만의 동거가 시작되기까지, 그러니까 이 영화가 출발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30년이다. 수용시설에서의 삶, 시설 내 인권 침해 사건, 장애를 온전히 감당해야 했던 가족사. 길고 긴 시간을 통과한 이야기들은 영화의 밖에 있다. 영화가 들여다보는 그녀들의 시간은 지나치게 평온하다.

 

<어른이 되면>을 보는 동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두 자매가 부딪힐 장애의 장벽을 세울 수밖에 없다. 여전히 차별이 만연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내 평화롭기를 갈망하지만 고단한 일상을 목격하고 말 것이라는 불안감을 쥐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말 가능한 걸까. 장애인의 자립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한 우려가 끼어들 때마다 영화는 더욱 태연해진다. 춤을 추듯 하루를 살아낸다. 다시 말해, <어른이 되면> 장애 가족’, ‘자립 분투기에 저항하고 있다. 영화는 매 순간 '장애'를 지우고 혜정을 호명한다. 생동하는 혜정의 유쾌한 기운을 한껏 담아낸다. 사회에 갑자기 등장한 장애가 아닌 혜정과 혜영이 있던 곳에 지역 사회가 초대된 듯한 마법 같은 시간을 만들어 낸다.

 

영화의 마법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음악이다. 그녀들의 집엔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우쿨렐레가 있다. 음악을 즐기는 친구들과 일상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음악으로 영화의 공간을 채우고 서사를 만들어 낸다. 영화에서 혜정은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친구(인서)와 음악 공부를 한다. 장애가 있는 그녀에게 음정과 박자를 맞추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일 것이다. 악기를 연주해보기도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좋아하는 트로트 리듬에 춤을 추고 싶은 혜정과 물러서지 않고 수업을 이어나가는 인서의 실랑이는 사뭇 진지하다. 단호한 태도로 이 장면을 응시하는 영화는 다음의 장면을 향해 달려간다. 이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일 것이다. 그들이 마련한 송년 파티에서 오랜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노래가 공연되는 장면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이 그들을 향하고 합주가 시작된다. 멈출 수도 선곡을 되돌릴 수도 없는 단 한 번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영화의 마법은 완성된다. 편안한 멜로디와 리듬, 노래의 명징한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온전히 전달되는 순간 음악이 가진 힘을 발견하게 된다.

 

감독은 본인의 삶을 기록하면서 동생 혜정을 관찰한다. 스스로의 편견과 싸워가며 좀처럼 열리지 않는 세계 앞에 서 있다. 합주를 완성해 낸 혜정은 쉽지 않은 소통과 조율을 기꺼이 시도하려는 문을 열고 있다. 어떤 말로도 설명되지 않는 감정, 너무도 달랐던 30년 생의 정체성이, 그녀들의 자립을 함께하는 친구들이 한데 모인 이 자리는 작은 우주다. 그들의 음악이 선언하듯 죽임 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 굶어 죽지도 굶기지도 않고서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는 실험의 출발점에 이 영화가 서 있다. 팽팽하게 매달린 줄들의 장력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화음을 만들어 낼 수 없다. 평화로운 가운데, 또 다른 악기와의 조율과 리듬이 어긋나면 음악이 될 수 없다는 단호함을 감추고 있는 <어른이 되면>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전한 음악영화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최성규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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