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2010) ---------------------------------------------------------------------------------------
감독 : 임순례
두고 보세요! 내가 이 소 팔아버릴 테니까!
귀향해서 부모님과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고 있는 선호(김영필). 사사건건 간섭하는 부모님과 지루한 농촌 생활에 불만이 가득하다. 게다가 다른 소보다 엄청나게 먹고 싸는 소, 한수(먹보) 때문에 쇠똥만 치우다 남은 청춘 다 보낼 처지다. 어느 날 선호는 홧김에 한수를 팔기 위해 부모님 몰래 길을 떠나고 만다.
나야… 오랜만이지? 아직도 내가 용서가 안돼?
우여곡절 끝에 우시장에 도착하지만 소를 팔기에 실패한 선호에게 7년 전 헤어진 옛 애인 현수(공효진)의 전화가 걸려온다. 현수는 그녀의 남편이자 선호의 친구였던 민규의 죽음을 알리며 장례식장에 와달라고 한다.
이젠 네가 아니라 내가 지겨워 진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현수는 아직도 상처가 남아 있는 선호와 달리 여전히 담담하고 자유로운 모습. 선호는 아픈 옛 기억과 현수에 대한 감정으로 혼란스러워 한다.
너 정말 주인 잘 만난 거야. 이렇게 세상 구경을 다 해보고…
괴로워하던 선호는 현수를 남겨두고 한수와 길을 떠난다. 선호는 추억의 장소에 도착하고, 그 곳에서 다시 현수를 만나게 된다. 결국 선호는 가는 곳 마다 나타나는 옛 애인 현수와 자신의 답답한 속사정도 모른 채 되새김질만 하는 한수와 함께 여행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들의 사연 많은 7박 8일 여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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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온 나라가 구제역이라는 대학살을 치루고 있다. 칼을 쥔 자의 트라우마는 있되 생매장된 존재의 인터뷰는 있을 리 없는 한국판 아우슈비츠.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재앙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고, 피해액과 처리비용이 연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는 뉴스만 소란하다.
평생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을 것 같은 시골 노인네가 담담하게 말을 하다 목이 멘다. 아이처럼 숨을 몰아가며 빈 축사를 어루만지며 울고 있다. 소가 죽었다. 소의 아버지, 할머니, 외증조부의 꼴을 주던 내 아들이 자라 그의 손녀가 이름을 붙여준 소가, 죽었다. 화재로 잿더미가 된 집 앞에서 망연자실한 눈물보다 더 깊은 슬픔이라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임순례의 5번째 장편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영화보다 영화 밖에 있다는 말이지만 당연하다. 임순례의 영화는 뚜벅뚜벅 세상으로 걸어나왔으니까.
영화는 소와 여행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놈의 소가 미워서 시작된 여행길이지만 소마저 잃으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이 영화가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다는 느낌이 든 건 소가 불가의 영물이어서만은 아니다. 소는 모든 갈등과 사건과 상관없이 묵묵히 목격하고 있는 존재다. 여러 사건에 휘말리지만 소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하는 설정. 보기만 하는 존재를 끊임없이 인식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임순례 감독의 실험이 흥미롭다. 영화에서 뜬금없이 소가 말을 했던 대사, "그렇게 문을 잠그고 사람까지 태울 필요가 있냐" 소름이 끼친다.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영화가 세상에 걸어나온다.
ps. 이름없던 소가 여행을 하면서 얻게 되는 이름 한수는 그 뜻이 '근본이 되는 물'이란다. 강을 살리겠다고, 소를 묻어야겠다고 파헤친 땅이 애처로운가. 아님 법당 마루 해탈스님의 은은한 미소가 간절한 정태춘의 한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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