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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학여행

몽상(최성규) 2024. 10. 29. 12:27

수학여행 (2010) A Brand New Journey -------------------------------------------------------------------------------------

감독: 김희진

 

매일 녹즙배달과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새벽잠을 설치는 중학생 병화. 그러나 며칠 뒤에 있을 제주도 수학여행 생각에 잔뜩 들떠 피곤한 줄도 모른다. 큰맘 먹고 운동화도 한 켤레 사고, 수학여행에서 선보일 아카펠라노래 연습 역시 열심이다. 하지만 녹즙가게 사장은 이상한 핑계를 대며 월급을 미루고, 결국 병화는 제주도 대신 가까운 서해 바다를 찾는데…. 가난의 무게에 짓눌려 작은 추억 조차 만들지 못하는 소년의 축 쳐진 어깨와 쓸쓸한 눈빛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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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44만원세대의 응원가

 

 

 

두 눈을 뜨고는 도저히 못 봐 주겠어. 차라리 눈을 감고 싶지만 나는 눈이 부실만큼 시력이 좋단 말이다. 그래서 한 쪽 눈은 쉬게 해야겠거든. 보고 싶지 않은 것만큼, 보고 싶은 게 많은 나이니까. 나는 그 놈의 제주도에 가고 싶고 열심히 연습한 노래도 해야겠어. 나이키는 꼭 신어야 하고. 우리 선생님은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서해안 조수간만의 차를 몸소 설명해주는 분이지만, 안대가 왼쪽 오른쪽 눈을 왔다 갔다 하는 건 모르신다.  알바 사장님은 월급은 안 주지만 평화라고 쓴 현판을 사무실 벽에 달아놓는 분이고.

 

 

과묵한 주인공을 대신해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예비 88만원 세대라 일컫는 44만원 세대. 근로기준법이 가이드한 시급 4000원을 받는 청소년 알바생은 얼마 되지 않고, 식비도 쉬는 시간도 없이 연장 근무까지 해서 버는 돈은 고작 40여 만원. 기초수급가정 아이들 식대 예산마저 잘려나가는 시대. 이 영화는 44만원 세대를 그리고 있다. 하루가 고달파서 요란스럽게 소리치긴 피곤하고, 그렇다고 안쓰럽게 봐 주는 것도 별로. 브리태니커 전집을 판 돈마저 가로채는 형과 박스를 붙이는 어머니가 있는 집구석이지만 수학여행은 가고 싶었다. 영화는 되는 일 하나도 없었던 수학여행 좌절기를 담고 있지만 앞서 구성한 가상의 대사처럼 조용한 파이팅이 있다.  

주인공이 차고 다니는 안대는 내러티브와 상관이 없지만 영화의 연출 의도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다. 안대가 부족한 수면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건 애초에 알고 있다. 맞서 싸우기도, 그렇다고 눈을 감기도 뭣한 세상, 보고 싶은 것만 보겠다는 의지와 숨어 쉴 곳이 필요한 44만원 세대에게 필요한 설정이라는데에 멈칫햇다. 안대를 벗기면 호밀밭을 상상하던 콜필드의 썩소가 나타날 것만 같다. 그렇게 벗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안대를 벗게 해 준 건 선생님도 부모도 아니었다. 매일 아침 광고지를 붙이며 돌던 코스를 늘 먼저 다녀간 44만원세대의 친구 한마디면 됐다. 가벼운 봄바람처럼. 나이키 신발에서 쏟아진 마른 모래알 같은 말. 야. 너. 안대.

 

또한 이 영화는 그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감독 자신의 생생한 발언대가 아닌가. 2010년 대한민국에서 영화감독 시작하기. 친구들에 비해 유난히 머리가 짧고 여드름이 가득한 주인공이었다고 기록하던 카메라가 안대에 화룡점정을 찍는 순간 고쳐 앉았다. 한 쪽 눈은 카메라에, 다른 눈으로는 세상을 똑바로 보겠다는 김희진 감독의 view finder 같았던 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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