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들에게Dear Sujin (2009) -------------------------------------------------------------------------------
감독 : 강연하
마트를 벗어나고 싶은 '수진'.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오는 두 명의 여자들. (2009서울독립영화제)
------------------------------------------------------------------------------------------------
<수진들에게>
“원 플러스 원 행사가 진행 중입니다.”
핑크색 블라우스의 여인이 마트에 입장하고 있다. 원 플러스 원 행사를 알리는 판매원들의 목소리가 분주해진다. 판매원의 목소리는 크고 밝게, 자리를 이탈해서는 안 될 것이다. 카메라는 여인의 등 뒤에 바짝 붙어 판매원 수진을 지켜본다. 무엇을 살 것인지, 수진이 어떤 사람인지 관심 없는 눈. 감시에 가깝다. Zoom out 이 되면 핑크 블라우스의 여인과 유니폼의 수진이 한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조심스럽게 서로를 관찰하고 있는 두 여인.
인물들은 좀처럼 시선을 맞추지 않는다. 수진과 옷 가게 점원은 마트에서 번갈아 한 번씩 옆 얼굴에 말을 걸고, 옷가게에서 서로의 위치가 뒤바뀐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다른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노동을 팔고 사는 순간 서로를 감시하는 눈. 한 차례 서로의 처지를 확인한 버스 안에서도 둘은 서로를 보지 않는다. 앞자리의 여고생을 바라보며 꺼내는 말은 대화라기 보단 혼자말에 가깝다. 또 다른 시선. 동료들과 절대 섞이지 않겠다고 돌아 선 수진과 자꾸 다가가는 민희. 둘의 시선 역시 비껴간다. 라커룸에서, 해고를 확인한 뒤, 찾아간 민희의 집에서도 둘은 서로를 볼 수 없었다.
갈등은 좀처럼 터지지 않고 해소되지도 않는다. 해야 할 말들은 망설이다가 훔쳐보기만 한다. 관리자에게 동료의 업무 태도와 사생활을 보고하던 수진은 정보원이다. 없는 사실을 만들어 보고할지언정 해고만큼은 피할 생각이다. 동료들과 거리를 두겠다고 마음먹은 수진에게 말을 걸어오던 단 한 사람, 민희는 이상한 존재다. 차갑기만 한 수진의 반응에도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렇게 살면 힘들지 않"냐고 뜬금없이 묻고, 해고를 확인하는 순간 원망의 눈초리로 수진을 바라본다. 원 플러스 원. 민희와 수진은 서로를 감시했던 정보원이다. 해고된 민희의 집 앞, 대문을 차마 두드리지 못하고 갑자기 던진 돌은 내내 억누르기만 하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감정이 폭발한 순간이다. 어쩌면 돌아 나왔다가 다시 문 앞으로 갔던 어느 즈음에 민희와 수진의 눈이 서로를 발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감시의 눈은 도처에 존재한다. 하나는 하나를 낳고, 누군가는 밀려나고 막차에 오른다. 어느새 수진의 자리는 다른 사람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 자세로 일하면 힘이 든다며 애써 건넨 말은 어딘가 힘이 없다.
단편<수진들에게>는 하지 못한 말이 많다. '누군가의 노동을 쉽게 빼앗을 기회입니다’. 한 편에선 원 플러스 원 행사가 벌어지고 있고, 빼앗고 빼앗기는 노동이 같은 옷을 입고 있다. 유니폼을 입은 두 여인, 핑크색 블라우스를 입은 두 여인은 눈을 맞추지 못한다. 안타깝게 지켜보던 카메라는 감독의 손을 빠져 나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도구가 된다. 노동자라서 숨을 크게 쉬지 못하고, 여성 노동자라서 질식해 가는 그녀들 앞에서 감독은 차갑게 지켜보는 쪽을 선택했다. 그 카메라가 얼마나 무거운 줄 아느냐고, 왜 붉은색이 아닌 핑크색이었는지 알기는 하냐고 묻는 감독은 곧 그녀들이기도 하다. “요즘 애들이 열심히 안 살아서 그래..” 화해를 할 수도 감시를 그만둘 수도 없는 그녀들과 또한 버스에서 몸을 쉬고 있던 여고생이기도 했던 모든 수진들에게 보냈던 선물. 붉은 머리띠 대신 준비한 핑크색이 애틋한 이유다.